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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f Reviewer/Books

철학의 에스프레소

19. 흄 (1711 ~ 1776)

회의주의자, 영국

"나의 철학이 나를 사람 없는 고독 속으로 이끌어오고, 두려움과 혼란 속으로 데려왔음을 본다. 내가 이상하고 꼴사나운 괴물이라서 사람들 사이에 섞여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못하고, 모든 인간관게에서 좇겨나 완전히 고독하고 위안 없이 버림받았다고 혼자 상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책 <브리튼 역사> 

"형이상학적 이념들은 오성으로는 접근할 길이 없는 대상들 속으로 뚫고 들어가려는 인간적 허영심의 결실 없는 노력의 산물이든가, 공개적인 장에서는 자신을 방어할 수 없고, 따라서 자시니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뒤엉킨 정글을 찾는 미신이 만들어낸 작물이다." -> 가짜 철학의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 -> 인간 인식의 어둠 속에 빛을 비추려고 했던 게몽사상의 대표자.

-> 인간의 오성을 엄격하게 탐구하고 그 힘과 능력을 정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오성이 그처럼 이상하고 애매한 대상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히는 것! 오성은 초감각적인 영역으로 멀리 나아가서는 안되고 경험의 영역에 머물러야함. - 경험론자.

오성과 이성은 자체적으로 그 어떤 참도 가질 수 없고, 감각적 인상들만 남음 ->

1. '나' - 자신으로 파악되는 통합적인 '나'라는 것은 본래 없다. 감각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에 지니지 않는다. 

2. 모든 과정들을 인과율의 관점에서 파악한다는 것: 즉 하나를 다른 것의 결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음. -> 칸트에 영향.


20. 칸트 (1724 ~ 1804)

아주 엄격하고 규칙적인 생활. 인간의 본질이 자유에 있음.

눈에 보이는 현실 안에서, 그리고 이러한 현실 뒤에서 진짜로 작용하는 것에 대한 물음, 모든 제한된 것 안에서, 그리고 제한된 것을 넘어서 있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물음에 관심을 둠.

형이상학의 문제를 인간 안에 있는 절대적인 것, 세게에서 절대적인 것, 그리고 절대적인 것 자체 이 세 가지 문제로 정리 <신과 자유와 죽지않음>

칸트 - '순수이성 비판' 형이상학적인 영역에서 모든 것이 의문스럽다. 그러면 이러한 의심스러운 것은 어디서 생긴 일이고 어디에 근거하는 가?

=> 인간이 확실한 답변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 이성의 본질에 들어 있다. 인간 이성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그 뒤로 갈 수 없고, 그것의 바탕을 내려다 볼 수 없다. 자유의 문제에서 이런 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에 대해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고, 똑같이 인간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음.) -> 결국 물임이 길을 잃고 끝남, '모순과 혼란의 등장'. 

하지만 회의적으로 희망이 없지 않고, 인간 이성의 사색에서 '새로운 탄생'이 있다고 생각함. 

현실은 인간에게 원래 그 자체의 모습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능력의 특수한 방식에 따라 나타남. 즉, 우리는 물건 자체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이 우리에게 보이는 모습대로만 파악함. (인간은 거듭 자신의 한계를 넘어 인식을 확장하려고 노력함. 그리고 언제나 다시 그와 같은 노력이 실패하면서 유일하게 확실한 앎의 자리인 경험으로 되밀려오고 만다.) 

-> 경험의 영역게 국한시키는 것이 최종발언인가? 인간은 왜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의 주어진 한계를 넘어가려 하는가? 인간의 본질의 바탕으로부터 자신과 유한한 세계를 넘어서는 질문을 하려는 충동을 갖고 있음.

=> 순수하게 이론적인 사색의 방법x 인간은 행동하는 존재. 실천의 영역에서 답을 찾음. 

인간이 행동을 함에 있어서 멋대로,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고, '너는 이래야 한다.' 는 절대적인 것이 나타남. 

"인간에게 하나의 계율이 주어진다면 인간은 그로써 자신이 결정의 상황에 놓였음을 안다. 그러나 오로지 자유가 있어야만 결정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무조건적 계율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자유를 가졌다는 것도 확실하게 알게 된다."


21. 피히테 (1762 ~ 1814)

'도이치 민족에 고함' - 풍자문서, 정신의 폭력성을 지닌 싸움꾼.

도약과 추락이 끝없이 교차하는 삶을 살았음. 그의 철학은 절대적 행위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해서, 활동하는 나가 신의 심연 속에 가라앉는 것으로 끝남.

1. 칸트의 자유개념이 일관성이 없는 것을 발견. (나 가 인식을 할 때 자기 자신이 아닌 어떤 것에 의존함.)

-> 인간의 나를 절대적 나로 올려 보냄. 그러나 절대적인 '나'에는 신도 없고 다른 인간도 없고 세계도 없는 비현실이 됨. 

=> "나는 어디서도 어떤 있음도 알지 못하며 나 자신의 있음도 알지 못한다. 어떤 있음도 없다. 나 자신이 도대체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지도 않다. 그림들일 뿐이다. 여기 있는 유일한 것은 그림들 뿐이다. 그리고 이런 그림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림의 방식으로 안다. 둥둥 떠서 스쳐 지나가는 그림들. 그들이 반영하는 그 어떤 것도 없고 의미도 목적도 없다. 나 자신도 이런 그림들의 하나다. 모든 현실은 변해서 이상한 꿈이 되고, 꿈에 나타날 삶도 없고, 꿈을 바라볼 정신도 없다. " -> 세계, 그리고 그와 함께 우리 자신도 절대적 없음으로 가라앉는 '과격한 관념론'

- '나'가 본질의 바탕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이며 동시에 유한하다. 

최고의 자유를 통해 인간이 자기 자신의 자유와 자신의 힘을 포기하고 잃어버린다면, 그는 유일하게 참된 신적인 있음의 ... 일부가 된다. -> 절대적 신

"신만이 있고 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22. 셀링 (1775 ~ 1854)

엇갈린 평가, 모순 많은 성품.

피히테와 동일하게 절대적인 나, 절대적인 것에 대해 탐닉. 

자신의 바탕을 내려다보다가 부딧치는 것이 자기 자신 이상의 것, 곧 절대적인것이고 거룩한 것. 그리고 이것은 인간적인 나의 바탕이 아니라 동시에 다른 모든 현실의 바탕. -> 철학이 유한한 관점을 뒤에 ㄴ려놓고, 절대적인것의 관점으로 올라갈 것을 요구함.

스피노자가 오래전에 생각했던, 나뉘어 있는 모든 것이 근본에서는 하나라는 것, 모든 현실은 단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것.

-> 자연의 생명성, '감추어진 신'인 자연. 자연을 하나의 유일한 유기체라고 이해하려고 함. -> 자연은 '감춰진 신' 

그러나 자연은 아직 신의 고유한 계시가 아니고 이성이 '신의 완벽한 대립 모습'이다. 따라서 현실에 신이 나타나 있다는 측면에서는, 정신 및 정신의 역사라는 영역이 자연보다 뛰어나다. -> 자연과 정신을 통해 신의 현실화 과정이 완성됨.

=> 예술: 절대적인 것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필연적인 현상, 신의 유일하고 영원한 계시

현실의 고집스런 요소를 신을 통해 파악해야 함. 신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스스로 자신의 외적 표현인 세계가 되는 과정을 밝히려 함. 신이 자신의 통일성을 벗어나 자신을 자기 자신 위에 세우려고 하는 충동이 바로 우리 눈에 자연으로 보이는 것. 


23. 헤겔 (1770 ~ 1831)

진지하고 무뚝뚝함. 도이칠란트. '오로지 사색하는 인식의 정열 없는 고요함'

칸트가 가지고 있던 의무와 애착, 도덕 법칙을 의식하고 있는 본래의 자기와 부도덕한 애착들을 지닌 경험적 나로 나눈 것에 대해 '온전한 인간의 통합'을 되찾는 것을 문제로 삼음. -> 사랑은 인간의 도덕적 본질의 표현이 될 수 있고, 자연적인 애착에도 어울림. ->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헤겔 사유의 출발점.

변증법: 명제, 반명제, 종합명제로 이루어짐 - 사랑을 하려면 자기 자신에게 '내가 있다'고 말해야 함 (명제) -> 사랑에는 애인에게 자신을 내주는 것, 자신을 세운 것을 부정하고, 상대방을 자기 자신에게 세움 (반명제) -> 사랑에 빠진 사람이 애인에게 빠져 자신을 잊음으로써,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게 된다. (종합명제)

-> 사랑은 현실의 기본적 과정이다. 모든 삶은 사랑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사랑을 통해서 유지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속에 하나의 거대한 삶이 흐르고 있다 = '절대적 삶'. 모든 현실이 이것 안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았다는 것, 모든 것이 하나의 절대적인 것(절대적 삶)의 표명이 된다는 것 이 헤겔의 철학적 기본의도임. 절대적인 것의 관점에서 현실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짐.

- 절대적 삶은 사랑과 동일한 변증법적 구조를 보여줌 - 동일한 삶이 자기들 속으로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삶의 통일성) -> 통합된 삶은 살아 있는 존재 여럿 속에 흩어져서 나타난다. 동시에 원래 자기 자신과 하나인 삶 속으로 분열이 들어온다. '필연적으로 둘로 나뉘는 것이 영원히 대립적으로 형성되는 삶의 요인이다.' -> '삶 자신이 스스로 둘이 됨과, 도로 하나가 됨으로 드러난다.' : 꾸준히 계속되는 나누어짐과 함쳐짐이고, 자기에게 낯설어짐과 자신과 화해함이다. 삶은 이런 내면의 박자에 맞추어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창조적 본질을 드러낸다.

- 모든 삶을 신이라고 부름: "모든 것은 신 안에 살고 있다." -> 신 = 정신, 세계의 신. 절대적인 것은 정신이다. 정신은 절대적인 것의 최고 설명이다. '신은 절대적 정신이다.'

- 세계도 필연적으로 최종적으로는 정신적 본질임. 자연 자체가 정신임. 그렇다면 신이 어떻게 자연으로, 또 인간의 정신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신이 세계가 되어야 할 내적 필연성이 있는지를 보여줘야 함.

-> 인간 정신에서 출발함. 변증법적 도식으로 '밝으로 나가기 (아직 꿈꾸는 상태, 어린아이), 둘로 나뉘기 (꿈구는 상태에서 깨어나기, 자신을 주목하고 자신을 발견, 자신에게 낯설어짐), 동시에 자기에게로 돌아오기(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와 관찰을 당하는 존재가 동일한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과 화해하는 일)'가 정신의 발전이다. 

-> 내적인 신적 역사가 변증법적 생성으로서 완성됨을 보임. '신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바라보는 존재와 관찰을 당하는 존재로 나뉘어서 자신을 낯선 존재처럼 바라본다. (이렇게 자기 안에서 찢긴 신이 세계, 낯선 모습임, 세계는 한편으로는 자연으로, 한편으로는 인간 정신으로 나타남.) 그리고 바라보는 존재로서의 자기와 관찰을 당하는 존재로서의 자기가 동일한 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됨. (인간에게서 이루어짐) : 신의 자기 인식은 인간 정신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의 가장 내적인 의미다. 개별적인 존재와 역사(법, 국가, 학문, 예술..) 속에 나타남. 
-> 즉 헤겔은, 현실 전체를 절대정신의 순수하고 오나전하게 나타남이라고 해석하려 했음. 그러나 자연 속에는 의미 없고 오나전하지 못한 것이 있고, 수많은 실패와 낭비 및 되풀이들도 있다. -> 세계가 신이 순수하게 드러난 모습이 아니라는 결론.


24. 쇼펜하우어 (1788 ~ 1860) 

인간에 대한 혐오감, 염세적 세계관. -> 인간의 여기있음에 대해 특히 비관: 절대로 충족시킬 수 없는 수많은 욕구들을 부답스럽게 잔뜩 지니고 있음. + 서로의 삶을 고통으로 만듬 + 그러나 모든 생명체는 고통에 종속되어 있음.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전체 현실은 우선 인간에 의해 표상된 것으로만 존재한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은 물건들이 원래 존재하는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에게는 물건들의 표상만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다.  인간이 물건들에게 던지는 눈길이 시간적이고, 공간적이고, 원인과 작용을 찾음. 

의지: 통합하는 근원적 힘이고 인간 존재의 영역에서 자체로있음의 본질을 발견했다고 믿음. 의지는 인간의 가장 내적인 본질.

 - 세계를 그 자체로있음과 내적인 본질에 따라 관찰하면 세계는 의지다.

의지는 싸움과 대립으로 가득 찬 것. 그리고 오직 고통만 만들어내는 의지가 워닉적으로 부정되어야만 인간이 자신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 인간이 사방으로 순수한 필연성에 둘러싸여 잇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자유롭다. 즉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의지를 부정하면서 거기에 맞설 수가 있다. 


25. 키에르케고르 (1813 ~ 1855)

어린나이에 약혼녀를 만남. 파혼, 이러한 사고들을 통해 우울증에 빠짐.

'실존을 변화시키지 않는 참은 의미가 없다.'-> 인간의 실존이란 무엇인가?

실존의 가능성들의 세 단계:

불안 속에서 인간은 자유의 가능성을 자신의 근본적 본질로 체험한다. 그리고 인간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삶의 길의 단계들> - 1단계 '미적 단계' : 인간은 수많은 가능성들을 지니고 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사용하지는 않는다.

2단계 '윤리적 단계' : 정말로 결정을 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되고, 자신의과제가 될 수 있는 과제를 발견한다. 

3단계 인간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넘어 정말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음을 마침내 깨닫는다. 끊임없이 여기있음의 수수께끼를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의 있음이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음. 무력감, 유한성의 가장 깊은 표시. -> 그리고 인간은 새로운 가능성이 자기에게 열릴 경우에만 이런 극단적인 절망에서 벗어날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이 단순히 유한성일 뿐만 아니라 유한성과 무한성으로 짜여진 놀라운 직물임을 알게 된다. 본질의 또 다른 부분이 무한한 동경에 잠겨 다른 세계와 결합하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절망의 고통에서 다른 세계로부터 위안을 얻으며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위해서 타당한 가르침들도 얻는다. -> 인간이 여기있음에서도 무한성을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종교적 단계'. 오로지 무한한 것을 바탕에 두어야만 평화에 이루게 됨.

신 앞에 개인으로 홀로 서서 결정하는 삶.